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고슬라비아 전쟁 (문단 편집) === 19세기 ~ 1차대전 이전 === [[민족주의]]의 대두와 함께 19세기에 등장한 [[범슬라브주의]]는 피지배 상태에 처한 남슬라브인을 각성시키고 새로운 슬라브 민족 공동체를 결성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모든 남슬라브인이 이에 동의한 것은 아니였다. 범슬라브주의는 러시아 제국을 중심으로 그 사상이 발전되어 [[정교회]]와 [[키릴 문자]] 이외의 다른 슬라브 하위문화를 부정하는, 러시아 [[동화주의]]의 성격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정교회를 믿던 [[세르비아]]는 범슬라브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제1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하는 우군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가톨릭이 주류 종교인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인들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갖은 탄압을 당하는 [[폴란드인]]의 사례를 예로 들며 러시아가 주도하는 범슬라브주의의 확산을 경계하였다. 이후 이들의 주장은 19세기의 급격한 국제 정세 속에서 슬라브인이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존속할 방법은 오스트리아라는 든든한 배경 아래에서 자기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오스트로-슬라브주의]]로 확장되었다. 사실 오스트로-슬라브주의는 [[프란티셰크 팔라츠키]]를 비롯한 [[체코인]] 주도하에 형성되었으며 그래서 체코인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다. 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는 [[합스부르크 가문|합스부르크 왕조]]에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동시에, [[헝가리 왕국]]의 [[헝가리인]]처럼 동등한 주권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 양면적인 성격의 정치 사상이였다. 다만 크로아티아는 [[1848년 헝가리 혁명]] 진압에 찬성한 공적으로 [[프란츠 요제프 1세]]로부터 제한적으로나마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헝가리와 동등한 권리]]를 얻었기에 굳이 세르비아와 함께하려 하지도 않았다. 제국의 남슬라브인은 [[보헤미아 왕국]]의 체코인,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의 폴란드인과 연대하여 정치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오스트리아라는 체제 안에서는 당연히 지배민족인 독일계 [[오스트리아인]]과, [[대타협]] 이후 제국 내부에서 상당한 수준의 입지를 가지게 된 헝가리인의 견제에 의해 이들의 정치 활동은 점차 약화되었고, 제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같은, 제국 정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있던 사람들에게만 받아들여지는 정도로 그쳤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생전에 오스트리아-헝가리-크로아티아 제국, 일명 삼중제국을 지지하거나 [[대 오스트리아 합중국]]을 구상할 정도로 제국의 존속에 슬라브인의 입지 향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었고, [[사라예보 사건]]도 이러한 목적을 지니고 보스니아에 접근하다가 최후를 맞은 사례이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페르디난트가 황제가 되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켰다면 오스트리아 제국의 멸망이 몇 십년 정도는 멀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전체적인 구도로 정리하자면, 19세기 발칸의 슬라브족 문제는 크로아티아를 소유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세르비아를 영향력 하에 둔 [[러시아 제국]], 보스니아를 소유한 [[오스만 제국]]의 삼파전 구도로 진행되다가 [[러시아-튀르크 전쟁]]과 [[산 스테파노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상실하고, 산 스테파노 조약의 대안으로 선택된 [[베를린 회의]]를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치하에 속했으나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는 것은 오스트리아 제국이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일대일 구도로 전환되었다. 발칸 문제로 인하여 [[크림 전쟁]]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이는 머지않아 [[제1차 세계 대전]]의 불씨가 되었다. 당시 국제적 긴장 상태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발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작금(昨今)의 유럽은 화약고이고, 지도자들은 무기고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뿐이야. 작은 불씨 하나가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전쟁을 일으킬 거야. 언제 그 폭발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 일어날지는 말해줄 수 있지. '''발칸에서 벌어질 저주받을 바보짓이 그 폭발을 일으킬 거야.''' >-[[오토 폰 비스마르크]] 이 발언은 [[사라예보 사건]]으로 현실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에는 전체적으로는 강대국들의 이념인 범슬라브주의와 범게르만주의의 대립하에서 남슬라브 민족 분파들의 종교 갈등은 수면 하로 수그러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